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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단편소설 베스트25_다시 보고 싶은 작가들

우연히 접하게 된 현진건님의 ‘운수 좋은 날’! 청소년 시절 교과서 속 어느 귀퉁이에 있었던 짧은 소설로, 운수 좋은 날을 반어법으로 표현했다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접했던 한국문학의 작품들. 작품에 대한 마음을 열기도 전에 주제며, 작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한 후 시험 문제에 나올 법한 부분을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됐을 때, ‘와~’, ‘어머’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짧은 글 속에서 이런 훌륭한 구성을 할 수 있다니... 때론 맛깔스런 표현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표현에 그들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들의 젊은 시절에 쓰여 졌으며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것에 놀라지..
우연히 접하게 된 현진건님의 ‘운수 좋은 날’!
청소년 시절 교과서 속 어느 귀퉁이에 있었던 짧은 소설로, 운수 좋은 날을 반어법으로 표현했다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 있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접했던 한국문학의 작품들. 작품에 대한 마음을 열기도 전에 주제며, 작가의 의도를 먼저 파악한 후 시험 문제에 나올 법한 부분을 열심히 공부했던 시절이었다.

성인이 되어서 다시 읽게 됐을 때, ‘와~’, ‘어머’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짧은 글 속에서 이런 훌륭한 구성을 할 수 있다니... 때론 맛깔스런 표현에 미소를 짓기도 하고 때론 이해할 수 없는 표현에 그들의 고뇌가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들의 젊은 시절에 쓰여 졌으며 짧은 생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작품을 읽고 나면 다음 작품이 궁금해지기까지 했고 작가마다 다른 문체가 독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었던 시기, 그 시절 속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대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왔던 그 시절 젊은이들의 글을 읽으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게 될까?
그때만큼이나 우리도 혹독한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이 그 삶을 지내왔듯이
우리도 이 삶을 지내야 한다.

어떻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김유정(金裕貞)
소설가. 1908 ~1937년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노다지」가 『중외일보(中外日報)』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단함.

대표작
1935년 - 「소낙비」, 「노다지」, 「금 따는 콩밭」, 「봄봄」, 「산골」, 「만무방」 등
1936년 - 「산골 나그네」, 「동백꽃」, 「봄과 따라지」 등
1937년 - 「땡볕」, 「따라지」 등

폐결핵으로 29세에 요절하여 작가 활동 기간이 2년에 불과하지만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창작에 대한 의욕이 넘쳤다.
「봄봄」, 「동백꽃」에서는 가난하고 무지하며 순박한 인물 묘사를 희극적이며 인간미 넘치게 표현하였으며, 「노다지」, 「금 따는 콩밭」에서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어리석은 욕망을, 「따라지」, 「봄과 따라지」에서는 도시 속 가난한 작가의 생활을 표현했다.


현진건(玄鎭健)
소설가, 언론인. 1900 ~ 1943년
호 빙허(憑虛). 1920년 『개벽』지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로 등단함.

대표작 :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B사감과 러브레터」(1924) 「고향」(1926) 「무영탑」(1938-1939) 「흑치상지(黑齒常之)」(1939-1940, 미완) 「선화공주」(1941, 미완) 등

1920년대 초반은 자전적 소설인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을 썼으며, 중반은 자전적 세계에서 벗어나 식민지 사회에서의 민중의 문제로 눈을 돌렸다. 「운수 좋은 날」 「고향」 「불」 등이 그러하다. 1930년대 이후는 역사소설인 「무영탑」 「흑치상지(黑齒常之)」 「선화공주」 등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김동인(金東仁)
소설가. 1900 ~ 1951년
호는 금동(琴童), 필명은 춘사(春士) 혹은 김시어딤.

대표작
단편소설 「배따라기」(1921),「감자」(1925),「광염(狂炎)소나타」(1929),「발가락이 닮았다」(1932),「붉은 산」(1932),「김연실전(金姸實傳)」(1939) 등
장편소설 「여인(女人)」(1930)·「왕부(王府)의 낙조(落照)」(1935) 등
역사소설 「젊은 그들」(1929)·「운현궁(雲峴宮)의 봄」(1933)·「대수양(大首陽)」(1941) 등

1919년 주요한(朱耀翰)‧전영택(田榮澤)‧최승만(崔承萬)‧김환(金煥) 등과 함께 문학동인지인 『창조』를 발간하였고 이후 『창조』의 후속으로 『영대』를 발간했다. 동인으로는 『창조』동인을 포함하여 김여제(金與濟)‧김소월(金素月) 등이 있다.
장편 15편 이상과 단편 75편 이상의 다작을 발표했으며 각 작품 속에서 낭만주의, 자연주의, 사실주의, 탐미주의 등 다양한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입체적인 성격의 주인공들, 내용 구성의 치밀함, 3인칭 시점의 서술 등의 기법은 소설의 수준을 더 높이는 역할을 했다.


채만식(蔡萬植)
소설가, 극작가. 1902 ~ 1950년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조선문단』에 발표된 단편 「세 길로」로 등단

대표작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痴叔)」(1938)·「패배자의 무덤」(1939)·「맹순사」(1946)·「미스터 방(方)」(1946)·「논 이야기」(1948)
중·장편소설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민족의 죄인」(1949)
희곡 「제향날」(1937)·「당랑(螳螂)의 전설」(1940)

문단에 등단한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소설과 희곡·평론·수필을 썼다. 일제 말과 광복을 거처 전쟁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그의 작품은 현실을 반영했으며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 하층민의 몰락 등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최서해(崔曙海 )
소설가. 1901 ~ 1932년
호는 서해(曙海), 설봉(雪峰). 본명은 최학송(崔學松), 필명은 풍년년(豊年年).
1924년 1월 『동아일보』에 단편소설 「토혈 (吐血)」을 발표, 같은 해 10월 『조선문단』에 「고국 (故國)」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함.

대표작: 「탈출기」(1925), 「박돌의 죽음」(1925), 「기아와 살육」(1925), 「홍염」(1927), 「전아사」(1927) 등

최서해의 작품은 대부분 하층민의 빈궁상에 대한 이야기로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을 떠나 간도의 유랑 생활을 하는 사람들, 함경도 시골 배경의 가난한 노동자들, 잡지사 주변의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소설 속 하층민들의 힘겨움은 모순된 사회 환경에 의해 개인이 힘으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구조임을 깨닫고 이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도향(羅稻香)
소설가. 1902 ~ 1926년
본명은 경손(慶孫), 필명은 빈(彬). 도향(稻香)은 호이다.

대표작
1922 -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1923 - 「은화백동화(銀貨白銅貨)」,「17원 50전(十七圓五十錢)」,「행랑자식」,「여이발사」
1924 - 「자기를 찾기 전에」,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
1925 -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三龍)」

1921년 『배재학보』에 「출향」을 발표하면서 문필 활동을 시작했다. 박종화(朴鍾和)‧홍사용(洪思容)‧이상화(李相和) 그리고 현진건(玄鎭健) 등과 함께 문예동인지 『백조』 동인으로 1922년 1월 창간호에 「젊은이의 시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나도향은 이상·김유정과 더불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천재 작가 중 한 명이다. 6년의 짧은 기간 동안 약 25편의 작품을 남겼다. 초기 작품들은 백조파 특유의 감상적 환상적 경향이었으나 「여이발사」이후에는 사실적 경향으로 전환하였고 마침내 사실주의 소설의 전형인 「뽕」, 「물레방아」, 「벙어리 삼룡」의 수작을 남겼다.


계용묵(桂鎔默)
소설가. 1904년 – 1961년
소년지 『새소리』에 시 「글방이 깨어져」(1920)가 2등 당선으로 데뷔했으며 1925년 5월 『조선문단』 제8호에 단편 「상환(相換)」으로 등단 함.

대표작 「최서방」(1927), 「인두지주」(1928), 「백치 아다다」(1935), 「장벽」(1935), 「청춘도」(1938), 「병풍에 그린 닭이」(1939), 「신기류」(1940), 「별을 헨다」(1946)

작가 활동의 첫 시기(등단~1930년 전반)는 지주와 소작인의 갈등과 같은 계급 사회 및 빈곤 문제를 따뜻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 그의 문학적 황금기라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시기(1930년 중반~광복 이전)는 「백치 아다다」를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세련된 문장기교로 삶의 비애를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세 번째 시기는 광복 후 혼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립적으로 표현했다.


이효석(李孝石)
소설가. 1907년 ~ 1942년
호 가산(可山)

대표작
「도시와 유령」(1928), 「노령근해」(1931), 「돈」(1933), 「메밀꽃 필 무렵」, 「분녀」(1936), 「장미 병들다」(1938), 「화분」(1939) 등

1928년 『조선지광(朝鮮之光)』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생활이 어려웠던 시기의 초기작품은 경향문학(傾向文學)의 성격이 짙었으나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 순수문학을 추구하게 된다. 1933년에는 ‘구인회(九人會)’에 가입하여 순수문학의 방향을 더욱 분명히 하였다. 30대 전반(1936~1940년), 그의 작품 활동이 절정에 달하였으며 「메밀꽃 필 무렵」, 「산」, 「들」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를 잃은 후 실의와 병마로 36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상(李箱)
시인, 소설가. 1910 ~ 1937년
본명은 김해경(金海卿).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12일」을 연재(2월-12월)로 작품 활동 시작.

대표작
소설 「날개」(1936)·「지주회시(蜘蛛會豕)」(1936)·「봉별기(逢別記)」(1936)·「동해(童骸)」(1937)·「종생기(終生記)」(1937)등
시 「거울」(1933)· 「오감도(烏瞰圖)」(1934) 등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작품 활동을 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와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첨예하게 드러내준다. 시의 경우 그가 보여주는 것은 현대인의 황량한 내면풍경이며, 「오감도 시 제1호」처럼 반리얼리즘 기법을 통한 불안과 공포라는 주제로 요약된다. 또한 그의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 양식의 해체를 통해 현대인의 삶의 조건을 보여주는데, 「날개」의 경우 그것은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어떤 일상적 현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없는, 파편화되고 물화된 현대인의 소외로 나타나고 있다.
자료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한국현대문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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